트라우마

얼마 전, 둘째 녀석이 밤새 기침을 멈추지 않아서, 아침이 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입어 유치원에 가는 줄 알았던 녀석이 유치원이 아닌 병원에 간다는 소식에 눈이 동그래집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유치원도 가겠노라 부르짖기도 하고, 자신은 아프지 않은 척 손으로 기침을 막아보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둘째 녀석이 이렇게 병원을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주사때문입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이 주사를 자주 맞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두세번 맞은 것이 다인데도, 이 겁 많은 어린 아이는 병원에만 가면, 주사를 맞는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병원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아무리 주사를 안맞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곤 내내 겁먹은 표정으로 지내다 병원을 나설때가 되어서야 다시 얼굴에 미소와 생기가 돋기 시작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아이가 인생 가운데에서 앞으로 주사를 극복하는데에는 많은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자신이 마주하기 싫을 뿐더러 뛰어 넘기 힘든 두려움 혹은 상처를 두고 ‘트라우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 트라우마라고 불리우는 마음의 상처가 현재의 불행을 가져다 준다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삶의 불행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 때문이라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진단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아들러라는 심리학자가 이 트라우마의 존재를 부정하며 나서기 시작합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그의 트라우마에 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즉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인지 제가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아들러의 주장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들이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안에서 믿음의 의미를 발견해 나아갈 때 우리는 상처를 이기고 은혜를 누리는 자리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가롯 유다와 베드로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여 죄책감이라는 트라우마에 갇히게 되었지만, 두 인물이 보여주는 ‘후회’와 ‘회개’의 차이는 극과 극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늘 고단하고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그 상황을 아시고 이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 더 강함으로 드러나는 한 주가 되시길 예수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위재 드림

0 Comments

Add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