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어느덧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가을이 오면서 부쩍 아이들이 밖에서 놀자고 재촉합니다. 사내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는 밖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싶어합니다. 공으로 하는 운동신경이 꽝인 저도 아이들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공을 가지고 나가게 됩니다.

올해 들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부쩍 자란 첫째는 제가 있는 곳을 향해 공을 제법 잘 던집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 녀석은 공을 던지면 꼭 이상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던지는 폼을 보면 결코 제대로 날아갈 수가 없는 폼입니다.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폼으로 빙글빙글 돌며 공을 던지거나 제가 있는 곳을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던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너가 던지려는 곳을 보고 던져야지!’ 라고 이야기하면, 이 조그마한 녀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야! 그건 안멋있어!’ 아빠로서 이 조그만 아이의 세계를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저에게도 나타나곤 합니다. 최근에 저의 지도 교수님을 만나서 지금 쓰고 있는 소논문에 대해서 함께 나누던 중에 교수님께서는 꽤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논문의 양은 어렵사리 맞추어 졌지만, 내용이 처음에 목표했던 것과는 많이 벗어났던 것입니다. 제 생각을 표현하는 화려한 미사어구들은 많지만, 정작 내용에 있어서는 이미 다른 길로 가고 있기에 그걸 다시금 조정 해야했던 것입니다. 제 딴에는 멋지게 공을 던지려 하지만, 이미 목표를 보지 않고 공을 던지는 모습이 제 안에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온갖 미사여구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려 합니다. 물질, 능력, 건강 등등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이 없는 것을 비교하게 하며, 성공과 행복이라는 틀로 자신을 거기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의 길이 아닌 세상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늘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도전이 성도님들의 삶에 힘이 되길 소망합니다. 비록, 세상의 관점으로는 우리의 삶이 성공과 행복에 멀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우리도 또한 이 힘들고 지친 길을 걸어간다면, 세상의 그 어떤 미사여구도 꾸며낼 수 없는 값진 기쁨의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앞서가신 그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삶 가운데에 포기하지 않고, 담대히 인내하며, 그 그리스도의 기쁨을 누리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래봅니다.

 신위재 드림

0 Comments

Add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