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편지

외할머니의 기도

올해 89세가 되신 외할머니께서 최근 들어 종종 기억이 흐려지시고 자주 깜빡 깜빡하실 때가 있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 결과, 치매 초기단계로 진단을 받으신 후, 기억력 향상을 위해 매일 이렇게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2018년 11월 25일 주일입니다. 4시 40분에 이러나서 찬송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 부르고 기도했다. 10시 25분 교회 출석합니다. 심한보 집사님 주일 우리집까지 와서 내 손잡고 차까지 갑니다. 참 고맙습니다. 주일 오전…

잘못을 인정하기

잘못을 인정하기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더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며칠 전에도 작은 오해가 생기게 되면서 둘째 중호를 다그치며 혼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제가 흥분하였던 터라 앞뒤 사정을 묻지도 않고 아이를 혼냈던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억울함과 서글픔으로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 때, 울음 소리를 듣고…

감사의 인생길

유기성 목사님이 생애 처음으로 감사헌금을 드렸던 때는 1977년 여름, 군목 후보생으로 합격하였을 때라고 합니다. 당시 가난한 신학생 신분이었던 목사님은 감사헌금을 드릴 돈조차도 부모님께 받아서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게 느껴져 자신이 가진 아주 적은 돈까지도 보태어서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군목 후보생으로 훈련소에 들어가 훈련을 받던 중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너무나 끔찍했다고 합니다. 장애인이 될 뻔한 위기에…

정체성

가을이 되고 다양한 운동 경기들이 한창이라, 저도 관심을 가져보고자 스포츠 채널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응원하는 팀이 없으니 저에게는 운동 경기들이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것이었습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제게 묻습니다. “아빠는 누구 응원해? 한국? 미국?” 이 아이들 역시 제가 여지껏 보여주었던 운동 경기는 올림픽이 전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팀은 한국팀 아니면 다른 나라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곤 그냥…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로교회의 막내 이안이가 지난 금요일에 태어나 이 세상에서의 첫 호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으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과 신비로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된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단 10개월 만에 이처럼 사람의 형상을 가진 아름다운 생명으로 자라고 준비되어,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경이로울 뿐입니다. 창조자이시자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

시선

어느덧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가을이 오면서 부쩍 아이들이 밖에서 놀자고 재촉합니다. 사내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는 밖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싶어합니다. 공으로 하는 운동신경이 꽝인 저도 아이들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공을 가지고 나가게 됩니다. 올해 들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부쩍 자란 첫째는 제가 있는 곳을 향해 공을 제법 잘 던집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 녀석은 공을 던지면…

사랑으로 적시는 삶

꿈같이 행복하던 시간들은 다 지나가고 어느덧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아무렇지 않은듯 밥을 먹고, 짐을 챙기고 있지만 두 자매는 각자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고 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심사장 앞에서 함께 손을 잡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동생을 심사장 안으로 들여보낸 후에도 언니는 동생이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아내가 처제를 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마치 엄마가 딸에게…

커피

커피 군대에 있을 때 첫 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다시피 했던 군대였기에, 커피라는 음료가 아주 생소한 때였죠.  그래서 커피라는 것은 그냥 캔커피나 인스턴트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대에서 보던 티비에서 ‘아메리카노’라는 것이 당시 유행이라고 들을 것을 기억하고, 어머니께서 주문 할 때, 당당히 저의 커피 메뉴를 고르게 됩니다. 그 메뉴를 시켰더니, 어머니께선 신기하다는…

트라우마

얼마 전, 둘째 녀석이 밤새 기침을 멈추지 않아서, 아침이 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입어 유치원에 가는 줄 알았던 녀석이 유치원이 아닌 병원에 간다는 소식에 눈이 동그래집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유치원도 가겠노라 부르짖기도 하고, 자신은 아프지 않은 척 손으로 기침을 막아보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둘째 녀석이 이렇게 병원을 가기 싫어하는…

인비저블 (invisible, 보이지 않는)

소설가 백영옥씨는 자신의 글에서 ‘인비저블(invisible, 보이지 않는)’이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팩트체크 팀에서 일하면서 타인의 인정과 찬사 뒤에 숨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인비저블’의 특징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외과의사 뒤에 숨은 마취과 의사, 유엔의 동시 통역사, 스타 건축설계가가 아닌 구조 공학자같은 ‘인비저블’들의 존재 의미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부정확한 통역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건물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거나,…